포교사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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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재계를 다녀와서, 울산지역단 단장님 후기

울산지역단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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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단상 斷想 
* 이 글은 단장 업무와는 상관없는 인간 강학수의 주관적인 소회임을 밝힙니다.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 이는 허리 몸매 때문이 아니라네

이 시는 당나라 시인 東方虯가 전한시대의 절세 미인 왕소군을 그리며 쓴 詩 三首 중 하나로 昭君怨이라 한다. 잘 알다시피 저 엄혹한 시절에 정치 9단이라 하던 JP가 써서 널리 알려졌다. 매우 드라마틱하고 쓸쓸한 한 여인의 굴곡진 삶이 짠한 느낌으로 다가와 널리 회자되는 일이요 시다.
아마도... 그때가...1982년 정도 PEBA(Forward Edge of Battle Area)-B단계인 철원 근처서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인데 새벽녘 초소 근무를 서는데 하늘에서 삐라가 하늘거리며 떨어졌다. 그 내용은 복싱 경기로 사망한 김득구를 모델로 해서 미제에 의해 생체 실험대상으로 죽어 갔다며 미국의사가 김득구의 심장을 꺼내 손에 들고서 웃고 있는 끔찍한 그림을 그려서 미국과 우리 정부를 악의 축으로 묘사했었다.

그리고 그 실상을 모르는 남조선 백성들은 불쌍하니 지상의 낙원인 조선으로 오라 뭐 그런 내용이었다. 이 단순한 에피소드가 지금껏 기억에 남는 것은 그때 내가...이거 참~ 우리 아들이 군대 올때도 이렇게 할까? 라는 그렇지 않음 좋겠다는 희망과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얘기를 몇 년 전, 아들에게 했더니 아마도 손자도 그럴거 같은데..라며 분단이 백년은 갈 거 같다는 씁쓸한 의견을 내 놓는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알량한 이념으로 인해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더 큰 이익을 취하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가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한 인간의 작은 이기심으로 인해 오랑캐에 팔려갔던 소군의 스토리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온갖 교묘한 말로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난 최근 교리적인 부분을 거의 공부하지 않는다. 마스터 했단 말이 아니라 수용의 한계를 넘어서 포기했단 얘기이다. 그럼에도 단 하나 남겨 놓은 것은 연기-무아의 진리와 깔라마경에 나오는 삼독심 법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행했을 때 탐욕과 성냄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가르침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공부를 많이 한 어떤 존재라도 일상에서의 탐욕이나 화냄을 보면 그 사람이 진실한 불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삼독심을 여의는 생활 수행을 염불로 정했다. 시간나는대로 형편되는 대로 장례식장이나 법당에서 독경을 하고 있다. 수행이란 그저 하는 것이라 배웠다. 판단치 않고 밥 먹듯이 그저 하는 것...평상심시도의 경지까진 아니나 정해 놓고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이 불자의 삶이라 생각한다.
81년 5월, 어수선하고 강팍한 세상을 뒤로 하고 논산훈련소로 향했다. 입소 장정들을 위한 법당의 그 초라함을 보고..그 관리자께서 그래도 영남 병력이니 법당에 장정이 그득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많이 아쉬웠더랬다.

그런데 훈병으로 처음 맞이 한 휴일, 종교행사를 가서 본 법당에 깜짝 놀랐다. 그럼 그렇지..이 정도는 돼야지..근데 많이 생소했다. 법당이 슬래브 지붕에다 큰 불상이 올려져 있고 안으로 들어가니 웬 교회 스타일? 이라 생각 들 만큼 특별했다. 마루가 아닌 신을 신고 들어가는 법당을 처음 본 것이다.

4주간의 훈련소 생활 동안 일요일엔 줄곧 법당에 나갔고, 자대 배치 후에도 부대 근처의 심원사에 가서 법회 진행도 하고 독경에다 법문까지 약간은 날라리 불교병사를 데리고 거의 매주 법회를 보았다. 그게 어떤 사명 뭐 거창한 그런 것은 아니었고 그것이 그냥 좋았다.
세월은 흘러흘러 6년 전쯤, 내 아들이 또 연무대로 군입대를 했고 주말마다 거의 한 시간을 걸어 법당에 갔다고 했다. 그런데 법당이 엄청 크다고 자랑을 했다.

그리고 2017년 여름 팔재계수계법회가 연무대 법당에서 열렸다. 36년 만에 들어 가 본 육군제2 훈련소엔 두 개의 법당이 있었다. 내가 처음 갔었던 그 법당은 삼천불전이 되어 있었고 아들이 갔었던 그 법당-호국연무사는 주법당으로 수용인원이 다른 종교시설 보다 많아 부대의 각종행사가 그 곳에서 열린다고 했다.

거의 삼천명의 포교사님들이 그 법당을 꽉 채우고 팔재계를 실천하며 경전을 독경할 때 그 환희로움이란..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내 손자는 이 법당에 오지 않았음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이 땅의 젊은이들이 군인이 아니었음 하는 것이다. 나의 이념은 평화이다. 함께 평화롭게 마음 편히 살아가는 것이다. 전쟁의 공포없이..

맘에도 없는 오랑캐 땅에서 봄이 와도 풀하나 꽃하나 볼 수 없는 낯선 땅에 영원히 살다 묻히는 그런 슬픔이 없어야 한다.

지금도 수십만의 이산가족이 이제는 기억조차 흐릿한 고향의 잔상을 가지고 나직이 어머니를 부르며 세상을 뜨고 있다. 얼마 안 남은 1세대 이산가족..한 분이라도 생존해 있을 때 자유로이 왕래를 하게 할 순 없을까?
조국문제로 시끄러운 거 보니 또 허망한 바람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또..천년의 지나고 어느 뛰어 난 시인이 못난 조상의 일을 애도하며 슬픈 시를 짓고 또 그 시가 천년 이후의 민중들에게 회자되지는 않을런지...비가 오는 오늘은 왠지 걱정이 앞선다. 기우이기를 바란다.
이상 팔재계 장소인 호국연무사를 보고 온 개인적인 소회였습니다.
울산지역단장 석전 강학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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