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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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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방편문 (연원) -설명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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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은虛空과等할새片雲隻影이無한廣大無邊한虛空的心界를觀하면서淸淨法身인달하여毘盧遮那佛을念하고此虛空的心界에超日月의金色光明을帶한無垢의淨水가充滿한海象的性海를觀하면서圓滿報身인달하여盧舍那佛을念하고內로念起念滅의無色衆生과外로日月星宿山河大地森羅萬象의無情衆生과人畜乃至蠢動含靈의有情衆生과의一切衆生을性海無風金波自湧인海中 로觀하면서千百億化身인달하여釋迦牟尼佛을念하고다시彼無量無邊의淸空心界와淨滿性海와 相衆生을空性相一如의一合相으로通觀하면서三身一佛인달하여阿彌陀佛을常念하고內外生滅相인無數衆生의無常諸行을心隨萬境轉인달하여彌陀의一大行相으로思惟觀察할지니라

* 보리방편문 (연원)

(아래의 글은 청화 큰스님께서 1989년 4월 30일 동리산 태안사 해회당에서 설하신 법어로, 금륜회에서 발간한 <마음의 고향> 8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구어체의 표현을 그대로 실었으므로 큰스님의 육성을 연상하면서 공부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여기 보리방편문은 우리 마음이 바로 부처인 것을 조금도 군더더기 없이 여실히 하신 법문입니다. 연원은 제 2의 석가라 하는 용수(龍樹)보살께서 금타대화상(金陀大和尙)의 삼매 가운데, 즉 선정 가운데 -깊은 선정에 들면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보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용수(龍樹) 성자로부터 이렇게 감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전파를 생각해 보시면 짐작이 가십니다만 가사 십만년 전에 누군가가 말을 했다 하더라도 정말로 정밀한 레이더와 컴퓨터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포착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물리학도 그렇게 말을 합니다.

따라서 도인들은 삼매에 들면 몇천년 전이나 미래의 일도 충분히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저같은 사람은 아직 천리 만리라서 어림도 없지요마는, 우리는 그런 가능성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부처님은 모두를 다 알고 모두를 다 할 수 있다, 이렇게 믿어야 진실한 불교 신앙인입니다. 원래는 우리 인간성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금타대화상 그 어른께서 삼매중 선정 가운데서 용수보살로부터 현대 지성적인 시대에 알맞은 가장 고도한 수행법이라고 해서 전수 받으신 '보리방편문'입니다. .....

우리 마음은 지금은 별것이 아니지만 내내야 마음 저변은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 같이 그런 고도한 법문이 아니면 우리 마음이 항시 안정을 못 취합니다. 항시 불안스럽습니다. 전부가 다 부처다, 이렇게 되어버려야 본래성품이기 때문에 마음이 활발하니 풍요합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이 가장 풍요해지는 행법, 이와 같이 현상이나 실상이나 모두를 종합적으로 수렴한 법문이 천태지의 선사의 법문이요, 금타대화상의 보리방편문입니다.

따라서 이 법문은 우주만유를 하나의 도리로 딱 통달해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체험은 미처 못한다 하더라도 사실은 우리 마음이 개운한 것입니다. 죽어도 죽지 않고 어디가 아파도 우리 불성은 아프지 않고, 아파도 말뚱말뚱 불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아프지도 않습니다. 이러한데서 우리가 불성 자리에 마음두고 사는 것이 불교인의 생활이지요.

염불도 결국 부처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부처를 안 떠나기 위해서 항시 부처를 염합니다. 본래 부처이니까 말입니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결국은 부처 뿐인 것이니까 부처를 안 떠나기 위해서 우리가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부처이니까 말입니다. 옛날의 방편염불은 부처님 그러면 저만큼 밖에서 우리가 부처님을 부르면 우리한테 와서 가피를 준다 이런 식이지만, 사실 원래 염불은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이것 보나 저것 보나 모두가 부처다, 이렇게 부처임을 염불하는 것입니다. ....

이 보리방편문은 우주의 모든 역사를 하나의 체계로 딱 묶은 것입니다. 하기 때문에 읽어보시고 읽어보시며는 더욱 더 깊이 생각해보시면 하나의 아미타 부처님으로 통일돼 갑니다. 우리 마음이 산란스러운 것은 이렇게 저렇게 자꾸만 시비분별하니까, 즉 우주의 도리가 하나의 진리로 통일이 안될 때는 산란스러운 것입니다. 중생은 미처 못 보아도 공자, 석가, 예수 그런 성자는 분명히 보듯이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딱 통일되어 갑니다. 즉 부처님으로 통일되어 갑니다."

* 보리방편문 (강설)

"心은 虛空과 等할새": 우리 마음은 허공과 같습니다. 허공은 어느 제한도 없고 어느 장애도 없듯이 우리 마음은 사실은 장애가 없는 것인데, 우리 중생은 나라는 장애 너라는 장애, 그런 상(相)에 지금 걸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걸려있는 것을 우리가 '마음은 허공과 등할새'라는 실존 그대로 말한 법문으로 해서 딱 털어버려야 합니다.

"片雲隻影이 無한": 조각구름이라든가 조그마한 그림자도 없는

"廣大無邊한": 넓고 크고 또는 갓이 없는

"虛空的 心界를 觀하면서": 허공 같은 그런 마음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우리 마음의 본바탕은 이와 같이 끝도 갓도 없는 광대무변한 허공 같은 세계입니다.

"淸淨法身인 毘盧遮那佛을 念하고": 이러한 세계인데 다만 텅비어 있는 생명도 없는 그런 허무한 공간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끝도 갓도 없는 그런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청정법신입니다. 오염도 없고 그야말로 청정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끝도 갓도 없이 훤히 비어있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비로자나불은 생명인 것입니다. 끝도 갓도 없이 훤히 트여있는 광대무변한 하나의 생명체, 이것이 이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입니다.

"此 虛空的 心界에": 이와 같이 끝도 갓도 없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 마음 세계에

"超日月의 金色光明을 帶한": 마음의 세계가 허무하게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달이나 해보다도 훨씬 더 찬란스러운 초월적인 그런 금색광명을 띠고 있단 말입니다. 그냥 우리가 물리적으로 보는 금색광명이 아니라 '초일월의', 그런 물체가 아닌, 물질이 아닌, 질료가 아닌, 순수한 적광(寂光), 정광(淨光)을 말하는 것입니다.

"無垢의 淨水가 充滿한": 그런 광명을 띠고 있는, 티끌이 없는, 조금도 때묻지 않은 정수가, 청정한 하나의 생명수가 충만한

"海象的 性海를 觀하면서": 마치 바다 같은 그런 성해를, 그야말로 끝도 갓도 없는 바다 같은 하나의 광명의 바다를 우리가 관찰한단 말입니다. 끝도 갓도 없는 광명의 바다를 관찰하면서, 이것 역시 끝도 갓도 없는 광명의 바다도 하나의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것도 생명이기 때문에 그때는 부처님 이름을 붙이지요. 원만보신 노사나불입니다.

"圓滿報身인달하여 盧舍那佛을 염하고": 그런 모든 가능성, 모든 생명을 생성하고 또는 섭리하는, 모든 가능성의 생명이 거기에 원만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원만보신 노사나불입니다. 부처님은 신비부사의하고 전지전능하신 살아계시는 실존(實存)의 초월적 인격체입니다. 여기 '인달하여'는 접촉사의 고어(古語)에 불과합니다. '원만보신인달하여' 이것은 '원만보신인'과 같습니다.

"內로 念起念滅의 無色衆生과": 자기 마음 안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없어지는 무색중생과. 우리 관념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좋다 궂다 밉다 예쁘다 하는 추상관념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무색중생인 것입니다. 우리 관념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무색중생입니다.

"外로 日月星宿 山河大地 森羅萬象의 無情衆生과": 밖으로 보는 해, 달, 별, 산, 내 등과 대지, 기타 모든 만상의 무정중생과. 아직 의식이 발달되지 못한 그런 중생들과

"人畜乃至 蠢動含靈의 有情衆生과의 一切衆生을": 식활동이 있는, 물론 아직은 의식이 완전히 발달은 못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오관(五官)은 있습니다. 사람이나 축생이나 또는 꾸물거리는 식이 있는 유정중생과의 일체중생을. 일체중생, 그러면 앞서 말씀과 같이 우리 관념의 무색중생, 일반동물이 아닌 무정중생, 동물인 유정중생, 이들을 합해서 일체중생이라고 합니다.

"性海無風 金波自涌인 海中區로 觀하면서": (cf. 區: 컴퓨터에 물거품 구자가 없어서 부득이 표기하지 못함. 삼수변에 지경 구, 나눌 구를 쓰면 물거품 구자임.) 일체중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일체중생은 모두가 다 그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는 그야말로 광명의 생명의 그런 바다, 초일월의 금색광명이 충만해있는 생명의 바다 위에서 바람도 없지만, 금파자용이라, 스스로 自자 뛸 湧자, 금색파도가 스스로 뛴다는 말입니다. 해와 달과 별, 사람과 동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다 무엇인가 하면, 무량무변한 천지우주에 금색광명이 가득한 가운데서 인연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생성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금파자용인 일체존재는 모두가 다 끝도 갓도 없는 금색광명의 바다에서 스스로 뛰는 바다 가운데의 거품으로 우리가 관찰한단 말입니다. 사실은 거품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는 바다에 있는 거품이고, 산이요 냇물이요 이런 것들은 사실 모두가 다 저 성좌(星座)라든지 은하계(銀河系)라든지 보다 더 큰 성운, 그런 것에 비교하면 하나의 점도 못되는 것입니다. 창해일속(滄海日粟)이라!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좁쌀 한 알 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千百億化身인 釋迦牟尼佛을 念하고": 석가모니불을 좁게 생각할 때는 저 인도에서 나오신 역사적인 석존이시고, 광범위하게 생각할 때는 천지우주의 모든 존재가 모두 다 석가모니불입니다. 이렇게 관찰하고,

"다시 彼 無量無邊의 淸空心界와 淨滿性海와 區相衆生을": 맨 처음의 비로자나불을 말한 청공심계와, 즉 끝도 갓도 없는 텅 빈 마음의 세계인 청공심계와, 천지우주의 그런 모든 역량 모든 가능을 갖춘 금색의 바다인 정만성해와, 금색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생 즉 말하자면 거품같이 일어나는 일체 중생을 하나로 본다는 말입니다.

"空性相一如의 一合相으로 通觀하면서": 청공심계의 空, 정만성해의 性, 구상중생의 相, 이것이 결국 셋이 아니란 말입니다. 일여란 결국 하나란 말입니다. 하나의 일합상으로 통합해서 종합적으로 관찰하면서

"三身一佛인달하여 阿彌陀佛을 常念하고": 청정법신, 원만보신, 천백억화신인 삼신이 결국은 하나의 부처님입니다. 하나의 부처인 아미타불을 상념하고. 아(阿)는 화신불을 의미하고, 미(彌)는 보신을 의미하고, 타(陀)는 법신을 의미합니다. 아미타불을 항상 생각하고. 내내야 그러니까 아미타불은 자기가 자기를 생각하고 우주가 우주를 생각하는 셈이지요.

"內外生滅相인 無數衆生의 無常諸行을": 자기 마음으로 생각하는 자기 관념이라든지, 또는 밖에 보이는 여러 가지 현상적인 것이라든지, 이러한 내외의 생하고 멸하는 수없는 중생들의 무상제행을. 무상제행이란 조금도 고유하게 머물지 않는 행이란 말입니다. 무상이라. 우리가 무상이라는 말을 굉장히 깊이 새겨야 합니다. 무상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떤 것이나 고유한 존재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떠한 존재나 어느 순간도 머물지가 않습니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나 내 관념이나, 부처님 불성 이외에는 모두가 움직이고 경망하기 짝이 없는 원숭이 같습니다. 덧없이 허망한 무상제행을 어떻게 보는가 하면,

"心髓萬境轉인달하여": '마음이 만경에 따라서 궁굴다' 마음이 만 가지 경계로 뒹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요 별이요 산이요 냇이요 모든 것이 무엇인고 하면 마음이라 하는 우리들의 생명체가 인과율을 따라서 만 가지 경계로 궁굴러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국이 나쁘게 흘러가는 것도 생각해보면 참 밉살스럽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딱하지만 그러나 모두가 마음이라고 하는 우리들의 불성기운이 인과법을 따라서 흘러갑니다. 우리 모두가 혼란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다같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彌陀의 一大行相으로 思惟觀察할지니라.": 미타의 미(彌)는 원만보신 노사나불, 타(陀)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즉 법신과 보신이지요. 현상적으로 제아무리 잘되고 못되고 천지가 모두 파괴돼서 텅텅 비어버리고 또 생성되고 하는 모든 것이 미타의 일대행위(一大行爲)입니다. 일대행상으로 생각하고 관찰할지니라.

 

출처: 금강(金剛) http://cafe.daum.net/vaj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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