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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三昧),삼마지(三摩地)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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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三昧)

 
범어 samadhi의 음사. 삼마지(三摩地)라고도 음사한다. 정(定), 등(等), 지(持),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고 옮긴다.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정(定); 범어(梵語) samáani 音을 따 三摩地(삼마지), 三摩耶(삼마야) 또는 三昧(삼매)라고 한다.-『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삼마지(三摩地) ·삼마제(三摩提) ·삼매지(三昧地) 등과 같이 산스크리트 사마디의 음역이다.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정(定)으로, 또 마음을 평정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등지(等持), 또 정수(正受) ·정심행처(正心行處) 등으로 의역한다. 일체의 자아(自我)나 사물이 공(空)임을 깨닫는 공삼매(空三昧), 공이기 때문에 차별의 특징이 없음을 관찰하는, 즉 무상삼매(無相三昧), 무상이기 때문에 원해서 구할 것이 없음을 관찰하는 무원삼매(無願三昧)의 삼매 또는 삼 해탈문(解脫門)은 이미 《아함경(阿含經)》 시대에 설파되었다. 이 삼매는 《반야경(般若經)》 등에서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더 나아가 독자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삼매 즉 정신통일에는 지(止:마음의 집중)와 관(觀:관찰)이 있는데, 지일 때에만이 올바른 관찰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승불교에는 소승불교와 다른 수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여 새로운 삼매가 설정되게 되었던 것이다. 《대품(代品)반야경》의 대승품에 108 삼매가 설명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처음의 수능엄삼매(首楞嚴三味 ·勇健三昧:번뇌를 깨뜨리는 용맹견고한 삼매)는 반야바라밀(지혜의 완성)을 실현하는 등 대승불교의 수행을 추진하는 실천력을 기르는 힘으로 《반야경》뿐만 아니라 《십지경(十地經)》 《화엄경(華嚴經)》과도 관계가 깊다.

또한 관불삼매(觀佛三昧)는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서 말하는 반주삼매(佛立三昧라고도 함)가 유명하다. 이는 불타를 마음에 떠올리고 삼매에 들어가면, 불타가 수행자 앞에 현전(現前)하는 것이다. 당시에 불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수행법이 불탑 앞에서 행해진 것으로, 불탑예배와 관련하여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o 三摩地(Samadhi); 舊稱 三昧 新稱 三摩地, 定 · 等持 · 心一境性 · 正受 · 調直定 · 正心行處 · 息慮凝心 · 現法樂住 等. 心念이 定止하므로 定이라 하고, 掉擧를 여의므로 等이라 하며 心이 散亂치 않으므로 持라 함. 定心과 散心에 通하고 다만 有心으로 平等保持함.
大論云 善心一切處에 住하여 不動함을 是名 三昧라 함. (大論은 智度論)
o 三摩鉢底(Samapatti); 定의 一名 等至라 譯, 等은 定力에 依하여 혼<心+昏>沈의 煩惱를 여의고 心을 平靜安和의 境地에 이르게 하므로 至라함. 有心과 無心에 通하고 다만 定에 在하며 散心과 不通함.
o 三摩희<口+四>多(samahita) 定의 一名 等引이라 譯, 等은 혼<心+昏>沈과 散亂을 여의고 心을 平等하게 함이요, 이 境界에서 모든 功德을 일으키므로 引이라 함. 有心과 無心과 有漏와 無漏의 五蘊의 功德을 그 體로함. 散心과 不通함.
- 智度論· 唯識論· 瑜伽師地論·俱舍論 -

삼매(三昧)에 대해서 계속해서 더 말씀을 하겠습니다.
삼매는 삼마지나 같은 뜻입니다. 삼마지(Samadhi)라는 인도 말을 한 문으로 할 때에 줄여서 삼매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삼매라 하고 새로 말할 때는 삼마지라 합니다. 뜻으로는 정 (定), 등지(等持), 심일경성(心一境性) 또는 정수(正受), 조직정(調直定), 정심행처(正心行處), 식려응심(息慮凝心), 현법락주(現法樂住)로, 다 같은 뜻이며 이름마다 다 각기 그에 따른 공덕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이름은 우리가 닦는 모양새라든가 또는 마음의 자세라든가 또는 얻어지는 공덕이라든가에 따라서 이름이 붙었습니다.
등지(等持)란 평등보지(平等保持)라는 말의 준말입니다. 조금도 차별이 없이 우리 마음을 평등하게 지니게 하는 것이므로 등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일경성(心一境性)은 우리 마음이 진여불성자리 곧 하나의 본래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는 경계이기 때문에 심일경성이라 합니다.
정수(正受)는 우리가 정다웁게 올바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우리 범부들은 모든 것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올바르게 받아들이면 결국은 다 부처로 보여야 하는데 중생들은 업장대로 보는 것이니까 밉기도 하고 좋기도 합니다. 따라서 삼매는, 마음의 번뇌가 가시고 마치 파도가 자면 모두가 제대로 비치듯이, 때묻지 않은 거울 모양이나 같은 것이 정수입니다.
조직정(調直定)이란, 범부 중생의 마음은 조화가 잘 안되어서 더러는 정(定)이 많기도 하고 지혜가 많기도 하고 의혹이 심하기도 할 때는 마음이 항시 산란스러운 것입니다. 마치 정(情)과 지(知)와 또는 의(意)가 조화되어야 하듯이 정(定)과 혜(慧)가 균등히 되어서 조화가 되면 마음이 곧게 됩니다. 그래서 조직정이란 마음이 조화롭고 곧은 선정이라는 뜻입니다.
정심행처(正心行處)는 우리 마음의 자세나 사념(思念)이 항시 바른 곳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식려응심(息慮凝心)이란 분별시비하는 마음을 쉬고 본래 불심(佛心)에다 우리 마음을 집중시킨다는 말입니다.
현법락주(現法樂住)는 삼매 공덕에서 나오는 기쁨을 말합니다. 세속적인 오욕락(五欲樂)이 아니라 청정 불멸한 안락, 무량의 법락(法樂)에 안주한다는 뜻입니다. 현대가 너무나 물질이 풍요한 사회인지라 우리는 육감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너무 많이 추구합니다. 이런 속락(俗樂)은 우리한테 업(業)만 더 증장을 시킵니다. 몸에나 마음에나 좋은 것이 못됩니다. 몸이 비대하기 때문에 주체 못하는 것 보십시요. 마땅히 법락만이 우리 마음에나 몸에나 가장 숭고한 행복인 것입니다.
삼매(三昧)란, 심념(心念)이 정지(定止)하므로 정(定)이라 하고, 우리 마음이 흔들려서 분별시비하는 도거(掉擧)를 여의므로 마음이 가지런하게 평등하게 되어서 등(等)이라 하며, 마음이 산란치 않으므로 지(持)라 합니다. 중생 마음은 산란스러운 산심(散心)인 것이고 수행이 되어서 삼매에 들면 안정된 정심(定心)이라 합니다. 그런데 산심과 정심에 통하고 다만 유심(有心)으로 평등보지(平等保持)함을 삼마지(三摩地) 곧 등지(等持)라 합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이 번쇄하게 느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삼매의 문제를 잘못 해석하는 분도 있고 책도 있어서 정확한 개념을 알아두면 참고가 되겠기에 번쇄함을 무릅쓰고 말씀을 드립니다.
포괄적으로는 삼매 가운데 삼마지·삼마발저·삼마희타 등이 다 들어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삼마지 삼마발저 삼마희타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마지는 정심(定心)과 산심(散心)에 통하고 다만 유심(有心)으로 평등보지(平等保持)하는 것입니다.
삼매에도 유심삼매(有心三昧)와 무심삼매(無心三昧)가 있습니다. 아직 정도가 낮은 때는 분별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유심(有心)삼매고 정도가 깊어지면 분별심이 스러진 무심삼매입니다. 그래서 삼마지는 아직은 무심삼매가 못되어 유심삼매(有心三昧)입니다. 그리고 우리 중생의 산심(散心)에도 삼마지 법이 있고 또 정심(定心)에도 있는데 산심(散心)에 있는 삼마지는 그 정도가 낮은 삼매이고 정심(定心)에 있는 삼마지는 고도한 삼매가 됩니다.
지도론에서는 '선심일체처(善心一切處)에 주(住)하여 부동(不動)함을 삼매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 선심(善心)이란 유루법(有漏法)이 아닌 무루법(無漏法)에서 말할 때는 바로 불심(佛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삼매라 하면 진리에 머물러 있는 마음이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삼마발저(Samapatti)가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삼매의 일종입니다. 정(定)의 뜻으로서 삼매의 일종이라 등지(等至)라고 합니다. 앞에 삼마지도 등지(等持)로서 음(音)은 같으나 가질 지(持)자요 삼마발저는 이를 지(至)자를 씁니다. 등(等)은 정력(定力)에 의하여 혼침과 산란의 번뇌를 여의고 마음이 평정(平靜)하고 평화스러운 경계를 의미하고 이러한 경지에 이르게 하므로 이를 지(至)자를 쓰는 것입니다. 등지(等至)는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에 통하고 오직 정심(定心)에만 있으며 산심(散心)에는 없는 것입니다. 삼마지 곧 등지(等持)는 산란스러운 산심(散心)에도 있는 정도의 것이었지마는 삼마발저는 삼매가 보다 더 깊이 되어서 산심은 벌써 사라지고 정심(定心)만 있으나 마음까지 무심(無心)이 된 것은 아닙니다. 더러는 유심 (有心)도 되고 더러는 무심 (無心)도 된다는 것입니다. 산심이 없을 때 비로소 정심(定心)이라 합니다. 산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직은 정에 든다는 말을 못 쓰는 것입니다. 산심이 사라져야 정에 든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삼마희타(Samahita)는 역시 삼매의 다른 이름의 하나로서, 삼마희타를 등인(等引)이라 번역하는데 등(等)은 혼침과 산란을 여의고 마음을 평등케 함이요 이 경계에서 모든 공덕을 일으키므로 인(引)이라 합니다. 유심(有心)과 무심(無心)과 또는 유루(有漏)와 무루의 5온의 공덕을 그 체(體)로 하며 산심(散心)과는 안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앞에의 삼마지나 삼마발저와 다른 것은 삼매에 깊이 들므로 해서 삼명 육통이라든가, 여러 가지 많은 공덕을 얻는 자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등인(等引)이란 삼매로 해서 공덕을 이끌어 온다는 뜻입니다.
지도론이나 유식론이나 유가사지론이나 구사론이나 이런데에 이렇게 번쇄하게 나오니까 마음 닦는 공부하는 분들은 혼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서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나 조사 스님들의 간결한 법어가 있는 것이니까 이런 삼매 풀이는 참고로만 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금강(金剛)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원문보기 글쓴이 : 경주

  • 이길성 삼매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엇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3-29 02:09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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