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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출처 - 일연 스님의 업적 .

서용칠

view : 1203

일연에 관한 자료가 있어서 올려드립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일연

1249년 정안(鄭晏)의 청을 받고 남해의 정림사(定林社)로 옮겨 이를 주재하였다.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장경 주조 중 남해의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의 작업에 약 3년 동안 참여하였다.
1256년 여름에는 윤산(輪山)의 길상암(吉祥庵)에 머무르면서 《중편조동오위 重編曹洞五位》 2권을 지었고, 1259년 대선사(大禪師)의 승계를 제수받았다. 몽고의 침입이 계속되는 동안 남쪽의 포산·남해·윤산 등지에서 전란을 피하면서 수행에 전념하다가, 1261년(원종 2)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갔다. 강화도의 선월사(禪月社)에 머무르면서 설법, 지눌(知訥)의 법을 계승하였다.
1264년 가을 왕에게 남쪽으로 돌아갈 것을 여러번 청하여 경상북도 영일군 운제산(雲梯山)에 있던 오어사(吾魚社)로 옮겨 살았다.
이때 비슬산 인홍사(仁弘社)의 만회(萬恢)가 그 주석을 양보하였으므로 인홍사 주지가 되어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268년에는 조정에서 선종과 교종의 고승 100명을 개경에 초청하여 해운사(海雲寺)에서 대장낙성회향법회(大藏落成廻向法會)를 베풀었는데, 일연으로 하여금 그 법회를 주관하게 하였다. 그의 물 흐르는듯한 강론과 설법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1274년 인홍사를 중수하고 협소한 경내를 확장한 다음 조정에 아뢰자 원종은 ‘인흥(仁興)’이라 이름을 고치고 친필로 제액(題額)을 써서 하사하였다.
또, 이때 비슬산 동쪽 기슭의 용천사(湧泉寺)를 중창하고 불일사(佛日社)로 고쳤는데, 그의 〈불일결사문 佛日結社文〉은 이때 쓰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1277년(충렬왕 3)부터는 충렬왕의 명에 따라 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1281년까지 살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이때에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281년 6월 동정군(東征軍)의 격려차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은 일연을 불러 그의 가까이에 있게 하였다. 그때 일연은 뇌물로써 승직(僧職)을 구하는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고의 병화로 불타버린 황룡사의 황량한 모습을 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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