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사단 사업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불교 바른정보사업

바른정보활동사례

네이버출처ㅓ- 우리나라 도자기의 역사와 종류, 제작방법알려주세요

서용칠

view : 1871

도자기 흙만들기:

광맥에서 캐낸 도토나  또는 각 성분에 맞게  조합된  원석을  맨 첫단계로

<수비>를  하게됩니다  수비라는것은  큰  웅덩이에  도토를 넣고  물에 풀어  잘 저어줍니다

때에따라  원석이  딱딱 할경우  잘게 잘 깨어  넣기도  하지요

그렣게  한참  잘 풀었다가  고운 채에  흙물을  걸러게 됩니다

그러면  부드러운  흙물은 빠지고  굵은  모래나  잡물은  걸러내고  이렇게  여러차례  이루어 지면

더  고운  흙을  얻을수 가 있게되지요

이것을  며칠두게되면  흙은  아래로  가라앉고  물은 위로 뜨게되는  앙금을  가라앉히는

거이지요

그리고  물은  따라내고  남은  흙은  적당히  잘말립니다 

이렇게  말려진 흙은  이제  실내로  가져 들어와   흙 창고나  작업실  한켠에 

적당히  물기를  조절해서  쌓고  가마니나  비닐로   잘  덮어  보름씩  한달씩두면

흙이  숙성이  되어  점력도  높아지고  차지게되어  도자기  만들기가   아주  좋아지게  되지요

이것이   우리가   볼수있는  흙이  물레위에  올라가   도자기를  빚을수  있기 전 까지의

단계이며  이제  본격적인  도자기 를 만들기 위한  준비가  된것입니다

 

 

일반적인  도자기  제조 과정:

제토 <흙만들기,>  수비  -성형<도자기 빚기,> 물레성형,타렴성형, 누르기 -장식<조각하기>양각,음각,

투각-  1차소성<초벌굽기>- 장식<그림그리기>- 시유<유약 입히기>- 2차소성<재벌구이>-  완성

도자기종류:

도기 ..
 
인류가 처음 사용한 그릇은 토기 (土器)였다.
 
그것은 시대를 거치며 때로는 유약을 바르기도하고. 유약을 바르지 않기도하고, 500,c 또는,
1100.c에서 번조되어 사용하였다.
 
도기는 선사시대의 토기를거쳐 신라시대(新羅土器). 가야토기(伽倻土器),고려토기(高麗土器) 청동기와 병행하여 발전하면서 신라, 가야토기는 아주 특징적인 모양을 갖는다.
이가운데, 그릇으로 사용한 도기와  사람,집, 동물, 등 여러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토기(象形土器)가 있다.토기(土器)와 상형토기들속에서 수천년을 한곳에서 살아온 민족의 특질이 잘베어있는 아주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찿을수있다.
 
때로는. 과장된 표현들이, 때로는 과장된 형태의 동물, 사람의 모습,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담한 성적인(性的 표현, 때로는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을 예술력적으로 표현하며 수천년을 살아온 선조 자신들의 모습을 현재의 후손들에게 당당히 전하고있다.
 
 
청자
 
중국에서 옥(玉)은 군자(君子)상징하며 부귀(富貴)와 사후내세를 보장해주는 신앙적의미를지녀 영생을 의미하며 악귀를 쫓는다고 믿어 부장품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당시 지배세력의 옥에대한 소유욕구와 부모의 묘에 옥을 부장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옥은 생산이 적어 매우 비싸 귀한옥을 흙으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중 전국시대를 걸쳐 삼국시대에 청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4C,에서 6C 경에의 고분에서 중국의 청자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당시 중국의 청자를 왕실의 옥기(玉器)로 수입하여 사용한것으로 알수있다.
9C경 중국의 호족(濠族)들에게 널리퍼진 불교의 선종(禪宗),이 좌선(座禪)을하는데 정신을 맑게하기위하여 차를 마시는 습관이 확산되면서 청자를 찻잔으로 사용하며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차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깨달름의 경지에 이르는 길로서 마셨다.따라서 차를 마시는 찻잔은 아주 중요한것이였고, 그찻잔은 금값보다 비싼 귀중한것이였다.
 
 
분청사기
 
한국도자기의 독특한 분야인 분청사기는 청자에 분을 바른것을 말한다.
14C 고려후기 고려를 이끌어오던 불교사회의 내세를 추구하는관념이 유약의 가르침에 따라
현실에 치중하는 사회로 변화하게된다.
그전의 청자는 귀족이며 종교적인 영향으로 실생활에 사용하기에는 한계를 갖고있었다.
 
사회의 변화에따라 청자 또한, 실생활에 필요한 검소한것으로 변하며 문양이 대범햐여해지고 표현기법도 간략해지기 시작하고 대량생산화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상감청자의 모습은 대중화되며 분청자의 모습으로 바귀게되었다.
15C에서 16C를 거치며 하얗게 분장한 면위에 철화(鐵畵), 선각(線刻),박지(剝地)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며 그표현은 익살스러움이있고 정돈되지않은 수더분하며, 그형태와 문양은 자유롭고,구애받을것없는 분방함,박진감 넘치는 표현으로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미(美)의 원형을 간직한, 가장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볼수없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옛날 우리의 사기장들은 대를 이어가며 평생도자기를 만들었으나 그생활은 무척 가난하였고무명(無名)으로 무념(無念)속에서 자연과 같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욕심없는 마음으로 도자기를 만들며 그특질은 도자기에 베어 꾸밈없는 아름다움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일본의 불완전함에서 완전을추구하는 미감(美感)을 갖는 지배계급의 문화와 맞아 조선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된다.이러한 문화속에서 일본인들은 조선의 좋은 찻잔을 갖는것은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써 하나의 성(城)과도 바꿀수있는 가치를 지니게되며 마침내 신기(神器)로 까지 부르게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도공이 만드는 막사발은 보물 (이도다완) 이되어 일본인들이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 한일전쟁을 이르키게되었으며 조선도자기에대항경모심을 갖고 그들을 데려간 도공들은 일본 도자기산업의 중심이되었다.
 
그후 조선의 분청사기는 한일전쟁으로인한 도공과 가마의 상실, 사회적 변화를 거치며 점차 백자화되며 사라지게 되었다.
 
 
백자
 
도자기 발달과정에서 청자가 발전하여 백자가되는것은 팔연적인과정이다.14C도자기는 중국으로부터 청자에서 백자중심으로 변화한다.
 
당시 중국과 더불어 백자를 만들수있던 우리나라는 왕실을 중심으로 사용되며 은기(銀器)를 대신하여 백자를 사용하게되었다.
 
당시 유학을 중심으로 사대부들이 이룬 사회는 우리내부의 진리발견, 우리의 재발견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찿고저 노력하였다.그러한 사상은 화려한 중국의 자기를 배척하고 간결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순백자를 만들어냈다.
중국의 (CHNIA) 는 중국을 CHNIA라 할 만큼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우리는 화려한자기를 받아드리지 않고  우리만의 것을 찿아 독자적인 백자문화를 이루었다.
 
일본(17C)은 중국의 그것을 배워라 . 아리타 (유전) 도자기 문화를 발전 시켰다.이과정에서 유럽인은 일본의 자기 기술을배워 18C초 유럽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을하며 거기서 소뼈를 태운 재를 첨가한 본 차이나 (Bone Chnia) 를 생산하게된다.
 
조선의 백자는 조선 사대부의 생각이 스민 청초하면서도 간결한 기품이있는 당시, 중국 일본과 뚜렸이 대비되는 독특한 품격을 나타내게된다.
조선도자기라하면 백자라고할 조선백자는 검소,질박,결백함을 가치관으로 중요하게 여겨온 우리 백의 민족의 상징이기도하다.
 
 
옹기
 
우리민족의 대표적 전통그릇인 옹기는 기원전 4000년전에서 5000년전에 만들어진 토기에서 출발한다.
그옹기는 인간이 만든 가장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다.
 
우리의 질그릇은 생활이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지면서 아주 다양한 형태와 특별한 용도로 쓰이며 우리민족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그릇으로 발전하였다.
 
옹기는 숨을쉰다. 자연과 상통하며 실제로 살아서 숨을 쉰다.
커다란 독물레에서 빚어진 너그럽고 풍만한 모습의 옹기는 우리의 오천년 음식맛을 항아리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지켜내며 이제 우리 인류에게 자연으로 돌아오라고 전하고있다.
 
그리고 좀더 세분화한다면 ,색자,황자,고백자,고분청,도자기라하기에는 제조과정이 조금 거리있는 와태(칠기에 가까움)등. 현대에 들어서 제조과정은 비슷하나 제조하는 이들의 판매방법으로 많은 용어들이 생겨나고있다

도자기의역사:

인류가 처음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시기는 대략 일만년전에서 육천년전 경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인 7~8천년 전부터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세계적으로는 도기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나 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와 중국, 베트남 정도 밖에 없었으며 특히 우리 나라와 중국은 그 조형이 독창적이고 양질의 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특히 고려청자 조선 분청사기와 백자를 만든 도자공예 기술은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만큼 빼어났다.
왕실과 같은 특정계층의 특수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도자기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이 일상적인 생활용구로 제작한 도자기까지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도자공예 문화유산은 한국인의 미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국 일본도자기에 비하여 기형에 있어서는 단순하고 색에 있어서는 조용한 색을 선호한 우리도자기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세계의 도자기 중에서도 뚜렷한 성격을 지니는 존재가 되었고, 그 하나하나가 지니는 미술적 가치 역시 높게 평가된다 또한 우리의 도자기는 도자기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국문화를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도자기의 수도 매우 많고 신석기의 빗살무늬 질그릇부터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남아있으며 지배층이나 피지배층 도시나 시골등 전 계층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만들어진 장소도 전국에 걸쳐있다

 

중국 일본도자기에 비하여 기형에 있어서는 단순하고 색에 있어서는 조용한 색을 선호한 우리도자기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세계의 도자기 중에서도 뚜렷한 성격을 지니는 존재가 되었고, 그 하나하나가 지니는 미술적 가치 역시 높게 평가된다 또한 우리의 도자기는 도자기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국문화를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도자기의 수도 매우 많고 신석기의 빗살무늬 질그릇부터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남아있으며 지배층이나 피지배층 도시나 시골등 전 계층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만들어진 장소도 전국에 걸쳐있다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