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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출처 - 김수로왕의 황후 허왕후의 묘비문

서용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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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의 황후 허황후의 묘비문

 
       
가락국 보주(普州) 허태후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허황옥의 족보 기록에 의하면 아유타국(阿踰 國) 왕의 딸이다. 금관(金官)국 고사(古事)에 의하면 남천축국(南天竺國)의 임금의 여식이다. 혹 다른 기록으로는 서역(西域)에 있는 허씨 나라의 여식이다. 또는 허황(許黃)의 나라라 했다.
즉 남천축국의 변방에 있는 나라라 했다. 그 나라는 유일하게 제후국으로서도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 나라는 고대(古代) 중국에 있었던 은(殷:商)나라와 양(梁)·위(魏)·사(邪)나라들의 먼 후손이다. 전하는 말로는 뿌리가 같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선대들의 기록에 의한다면 아유타국은 임군의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허황후는 선조들의 명에 따라 동쪽 땅에 있는 가락국(駕洛國)의 임금이었던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것이다. 그녀는 바다와 같은 강을 타고 떠내려가 이른 곳이 가락국이다. 그리하여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
호왈 보주태후(普州太后) 또는 황옥부인(皇玉夫人) 보조(普照)라고 한다.
동한(東漢:後漢) 광무제(光武帝, A.D.25∼56년) 24년이다. 김수로왕이 등극한 지 7년이었다.
동한(東漢) 영제(靈帝, A.D.168∼172년) 6년 3월에 태후는 죽었다. 이때 나이는 157세였다.
태후에게는 아들이 열 명 있었는데 태후의 성을 직접 받은 아들은 두 사람이었다.
후에 각각 봉작을 받은 땅에서 살았다. 공암(孔巖)과 하양(河陽)의 성씨는 다른 부족으로 느껴졌으나, 실은 같은 성씨인 허씨(許氏)였다. 태후의 묘지는 수로왕릉의 묘지에서 1리에 있었다.

보주태후의 묘비문에서 음미해야 할 대목은 아유타국의 본래 선조는 은상(殷商)으로부터 양(梁)나라와 위(魏)나라, 그리고 사(邪)나라를 통해, 남천축국의 남쪽에 아유타국이 생겼음을 나타내고 있다.
아유타국의 조상은 고대 은(殷)나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묘비에는 적고 있다. 그렇다면 남천축국의 제후국이었던 아유타국이 인도에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보주태후 묘비문에서 보면 천축국의 군신이 여자라 했다. 이것은 아유타국 나라가 천축국의 소속임을 뜻한다.
후한(後漢) 때라면 지금으로부터 1,972년에서 1,941년 전이다. 이때는 인도에 불교(佛敎)가 전파되지 않았는데, 당(唐)나라 때 불교가 인도로 건너갔다고《오백나한(五百羅漢)》이란 책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가락국 보주태후의 묘비문에서 주의깊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천축국은 은상(殷商, A.D.220∼265년)나라와 양(梁, A.D. 502∼557년)에 이르고 다시 사(邪:양나라의 제후국)나라에서 천축국으로 발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인도에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에 이미 서역에 다섯 천축국〔五天竺國〕이 있었음을 뜻한다. (律坤著「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지 않았다」참고)
천축국은 불교 나라이다. 불교 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아유타국의 공주(公主)로 태어난 사람이 보주태후 허황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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