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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스출처 - 태고의 신비가 살아있는 강원도 미천골

서용칠

view : 1916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미천(米川)골 

원시의 때를 벗어버린 미천골은 그래도 아직은 오지다. 세속에 물들어 간다고나 할까, 하지만 남대천 상류 지류로 응복산(1,359m)과 암산(1,152m), 조봉(1,182m) 등 하늘을 좁힌 산봉우리들과 멍에골, 상지골, 산죽밭골 등 10여개가 넘는 지류들이 모여 만든 지형상으론 오지 중의 오지인 것이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인 운두령(1,089m)과 우리나라 국도 중 마지막으로 포장된 56번 국도를 따라 아흔 아홉 구비 구룡령 고개를 내려서면 양옆으로 다가서는 울창한 수림 사이로 미천골의 신비는 펼쳐진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떠나버린 자리에는 민박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어 입구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여기는 오지가 아니다."일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드러나는 원시림은 이내 무공해 자연속으로 빠져들게 하는데,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가꾸어가는 자연의 속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준다.

선림원의 쌀뜨물이 내(川)를 이루었다는 미천골

미천골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불교사원이었던 선림원(禪林院)에서 씻는 쌀뜨물이 내(川)를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 산사태로 흙속에 묻혀버린 선림원은 지금은 그 터만이 남아 있는데, 당나라 유학승 출신으로 애장왕 왕비의 등창을 고쳐주어 왕의 하사금으로 802년 해인사를 지은 순응법사가 2년 뒤인 804년에 창건한 절이다.

당시의 선림원 터에는 보물 제444호인 삼층석탑과 석등, 홍각선사 탑비와 부도가 남아 있고, 순응법사가 창건과 함께 주조한 법종은 통일신라 대표적인 범종으로 알려진 상원사 범종, 에밀레종과 함께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1948년에 발굴돼 오대산 월정사에 보관되어오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퇴각하는 국군에 의해 불타버린 월정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한다.

원시 밀림 속에 자리한 미천골 휴양림 

자! 이제 본격적인 미천골 여행을 시작해보자. 1996년에 완공된 56번 국도와 1993년 개장한 미천골휴양림은 오지 속의 오지 미천골을 밖으로 끌어낸 계기가 된다.

산막과 야영장, 자연관찰원 등 여행자를 위한 편의 시설이 들어선 휴양림은 한여름 피서를 즐기기 위한 잠시 잠깐의 인파로 붐비지만 미천골의 참멋을 즐기기엔 가을이 제격.

설악의 화려한 단풍에는 비길 바가 아니지만 소박한 한국적인 색감과 오염되지 않은 청정계곡의 조화 속에 호젓한 산책을 즐기기에 최적이기 때문이다.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7km 가량의 숲길은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질 만큼 협소하지만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걷다보면 어릴 적 추억의 바로 그 장소가 되리라.

불바라기 약수

계곡의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1시간 가량 산길을 오르면 불바닥이란 뜻의 불바라기 약수가 기다린다. 폭포 위에서 뻘건 불기둥처럼 솟아나오는 약수는 철분이 주성분으로 위장병에 약효가 있다고 전해 오는데, 해발이 높아지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하늘빛을 벗삼아 다녀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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