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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출처 -제주도 문화재는 어떤것이있나요 ?

서용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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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                  목 담당부서 첨부 등록일 조회수
181 남제주 구 대정면 사무소(157호) 문화재과 2007-08-20 48
180 서귀포 천제연 관계수로 문화재과 2007-08-20 31
179 구제주도청사(155호) 문화재과 2007-08-20 13
178 제주이승만별장(113호) 문화재과 2007-08-20 22
177 남제주비행기격납고(39호) 문화재과 2007-08-20 29
176 남제주강병대교회 문화재과 2007-08-20 18
175 방사탑(민속자료 제 8호) 문화재과 icon_gif.gif 2007-07-10 540
174 귀리겉보리 농사일소리 문화재과 icon_jpg.gif 2007-02-26 453
173 제주불교의식(무형문화재 제15호) 문화예술과 2003-10-09 8,280
172 제주도내왓당무신도(중요민속자료 제240호) 문화예술과 icon_jpg.gif 2001-12-26 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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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간추려서..
1.관덕정

종 목 보물 제322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삼도1동 983
시 대 조선시대
관덕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에서 따온 말로,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누정 건물은 『탐라지』에 의하면 조선 세종 30년(1448)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다. 성종 11년(1480) 목사 양찬이 고친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보수한 것으로 원래의 건축 수법은 17세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한다.

‘관덕정’이라고 쓴 현판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쓴 글씨라고 전한다.제주도의 대표적 누정 건축으로 건축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이며 건물 안쪽 대들보와 그 아래에 그려진 작자를 알 수 없는 벽화도 상당히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2.삼성혈

종 목 사적 제134호
지 정 일 1964.06.10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이도동 1313
시 대 시대미상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의 구멍을 말한다.

3시조들은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사냥해 먹고 살다가, 다섯 곡식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가지고 온 벽랑국의 세 공주와 각각 결혼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구멍은 품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하나만 바다와 통하고 나머지는 흔적만 남아있다.

조선 중종 21년(1526)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단과 비석을 세우고, 주위에 울타리를 쌓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3.제주목관아지

종 목 사적 제380호
지 정 일 1993.03.31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삼도2동 43-40외
시 대 조선시대
관아란 벼슬을 가진 사람들이 일을 보던 건물로서 제주목 관아터는 제주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였다.

발굴조사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아의 중요한 시설이었던 동헌·내아 건물터 등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였다. 이로써 제주목 관아터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의 중심지 구실을 한 중요한 곳임이 밝혀졌다. 관아터 남서쪽에는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조선 세종 30년(1448)에 세운 관덕정(보물 제322호)이 있다.

4.고산리 선사유적

종 목 사적 제412호 
지 정 일 1998.12.23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628번지
시 대 석기시대
수월봉 앞 해안단구 대지에 넓게 형성되어 있는 신석기시대 전기의 선사유적이다. 신석기시대는 원시농경과 목축을 기반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인류문화 발달사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시기이다.

발굴 결과 나온 유물로는 석기 99,000여 점, 토기조각 1,000여 점이 있는데, 특히 원시형 적갈색 섬유질 토기조각은 독특한 토기형태로 고산리식 토기라고 불린다.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유물 조합을 통해 후기 구석기 말엽의 수렵채집 집단이 석기 전통을 계승하며, 초보적인 형태의 토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5.성읍민속마을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188호
지 정 일 1984.06.07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시 대 조선시대
제주도는 조선 태종 16년(1416) 안무사 오식의 건의로 5세기라는 긴 세월동안 세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그 중 성읍은 세종 5년(1423)에 지정된 정의현의 도읍지로서 산골 마을이면서 도읍지였다는 특이성을 갖추고 있다.

가옥으로는 조일훈 가옥(중요민속자료 제68호), 고평오 가옥(중요민속자료 제69호), 이영숙 가옥(중요민속자료 제70호), 한봉일 가옥(중요민속자료 제71호), 고상은 가옥(중요민속자료 제72호) 등이 있다.

정의현 관청건물이었던 일관헌을 비롯하여 느티나무와 팽나무(천연기념물 제161호)·정의향교·돌하루방·초가 등 많은 문화재가 있어,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풍경과 함께 제주도의 고유한 생활풍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6.대정향교

종 목 제주도유형문화재 제4호
지 정 일 1971.08.26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3126-1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세운 국립교육기관을 가리킨다.

대정향교는 조선 태종 16년(1416)에 세웠는데 이후 터가 좋지 않다하여 여러 차례 옮기다가 효종 4년(1653)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영조 48년(1772)에는 명륜당을, 헌종 원년(1834)에는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할 때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대정향교는 많은 보수로 인하여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장식이 검소하고 단청을 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간결한 느낌을 준다.

7.일관헌

종 목 제주도유형문화재 제7호
지 정 일 1975.03.12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809-1
시 대 조선시대
지금의 군청과 같은 건물로, 당시 정의현감이 업무를 보던 관청 건물이다. 원래 건물이 있던 곳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 조선 세종 5년(1423)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최근에 원형으로 복원한 것이다.

4각 기둥을 사용하였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주변이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161호)와 소나무로 둘러싸여 멋스러운 경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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