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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출처 - 조선중기 우는 암닭 文定王后

서용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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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이 즉위할 때, 인종 비 인성왕후(仁成王后) 박씨가 왕대비로 있었고, 문정왕후는 대왕대비로 있었다. 자연히 누가 어린 명종을 수렴청정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관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이언적(迪)이 나서 송나라 철종의 고사를 들어 대왕대비가 섭정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형수와 시동생이 함께 궁전에 나가 앉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명종의 생모인 문정왕후에게 섭정이 맡겨졌다. 이때부터 암탉이 크게 울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문정왕후는 흔히 조선시대 불교를 중흥시킨 여걸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종이 후사없이 일찍 죽어 예상치도 않았던 그녀의 아들 명종이 왕위에 올라 섭정을 했으니, 조선조 여인들 중에 가장 행운을 잡았던 인물 중의 하나였다. 남자들로 잡기 힘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채 떡 주무르듯 했으니, 그렇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그녀는 중종이 살아 있을 때에도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왕실의 재정을 맡은 내수사(司)를 통하여 사방의 절에 밀사를 파견했고, 각지에 내원당(堂)을 두고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전왕 중의 한 명인 성종의 문치(文治)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사림(士林)정치로 인해 불교는 열악한 형편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종 때에 불교에 심취할 수 있었던 것은 왕비였다는 특권이 작용했던 것이 분명하다.

 

어린 명종의 섭정이 시작되자 조정 대신들의 우려는 곧 현실로 다가왔다. 화려한 왕실불교가 발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려의 양종(宗)이 다시 설립된 것은 물론이다. 또 왕실의 우환을 잠재우고 안녕을 기원한다는 기복(福)불교 성격은 고려 이래 계속된 것이긴 하지만, 성리학 사회가 정착되어 가는 마당에 유학자들이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판 대결이 불가피했다. 결국 문정왕후가 불사를 일으키기 위해 중용한 승려 보우(雨)에게 그 화살이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문정왕후에게 직접적인 공격은 아무래도 위험이 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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