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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불교예술에 대해서 궁금한점들이 잇는데요

1) 불교건축에서 태양광선의 이용법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대표적인예

2) 고려 불교의 건축인데 왜 신라양식이 사용됐는지

3) 그리고 균형미와 조형미가 부족했던 이유

4) 불화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금가루를 많이 사용했던 이유

를 알고싶습니다. 빠른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

 

) 불교 건축에서 태양광선의 이용법은....... 저도 처음 들어보네요. 이런건 가능합니다. 한국의 불교미술에서 불상 주위에 있는 그림이나 단청 등은 붓다 재세시 붓다가 설법을 할 때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가령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천신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제자들과 뭇중생들이 설법을 들으려고 합장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 광명의 빛이 붓다가 설법의 자리를 비추는 묘사가 있죠.

만약에 태양광선을 이용한 방법을 사용한 건축의 예가 있다면, 당시 인도에 있던 다신적인 요소들 즉, 배화교나, 페르시아쪽에 태양 숭배 신앙의 영향을 받은게 아닐까 합니다. (마이트레아 신앙도 페르시아쪽에서 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 인도나 남방불교 쪽의 불교 건축을 한번 찾아보시는게 좋을 듯하네요

2) 현재 우리나라에 백제나 신라의 건축양식이나 불상, 벽화는 많이 남아있지만, 고구려의 불교건축이나 불상, 벽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고구려에 불교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라나 백제 못지않게 불교가 널리 전파되고 발전되었던 나라가 이 고구려 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고구려의 불교문화 분야로 연구가 진행된 예가 없죠.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삼국을 통일한 것은 신라이고 역사는 승자의 편에 서기 때문입니다. 또 현재 국경상 북한에 속하기 때문에 아쉽게도 우리나라 학자들이 연구할 수가 없는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 하더라도 그 양식은 기존에 사용되었던 신라의 것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실제로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신라는 불연국토설이라는 즉, 신라 국토가 원래 부처님과 인연이 있는 땅이었다라는 자부심 아래 유래없이 화려한 불교 문화를 꽃피웁니다. 그래서 고려는 신라의 불교 양식을 받아들였던거죠.

3) 신라의 불상은 조화와 균형감을 자랑합니다. 통일 신라에 만들어진 석굴암은 절대적인 비례와 조화, 균형을 자랑하죠. 신라 불교양식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이나 경주국립 박물관에 가보시면 그 시대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불상들은 매우 안정적이고 균형이 잡혀있으며 심미적 아름다움을 주죠. 그런데 고려로 넘어오면서 불상이 더 발전하는 게 아니라 퇴보(?)한다 싶을 정도로 그 균형미가 떨어집니다. 고려에 세워진 관촉사 은진미륵보살은 몸과 머리의 비례가 거의 1:1이라고 볼수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인데 어떤 학자들은 불교양식이 그 화려함과 균형감에서 정점을 찍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더 발전하지 못했다. 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고려는 신라가 그랬던 것 처럼 국가적 차원이 아닌 지방 호족 세력들이 세운 건축물이 많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라는 주장도 있으며, 너무 이상적이고 절대적인 균형미보다는 오히려 균형을 깨트림으로써 신라의 귀족적 불교에서 다시 친근한 서민의 불교로 돌아가는 과정(이 경우 고려 중기 이후가 되면 다시 문벌귀족이 지배하기때문에 권위적이고 균형적인걸 추구하게 된다고도 합니다.)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각 주장들이 근거가 있다고 봅니다. 여기 보태서 제가 보기에 신라만큼 고려가 불교에 힘을 쏟지 않은 이유도 있는것 같습니다. 고려도 불교국가이긴했지만, 신라만큼은 국가적 차원에서 힘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죠. 지원이 부족한 만큼 기술이 떨어지는 차원으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나라 불교 건축의 최고점은 신라인이 주최가 된 양식입니다. 신라인들은 원래 북쪽에서 내려온 기마민족이라고 하죠. 이 기마민족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이 옥과 금 입니다. 이 사람들이 신라땅으로 와서 뿌리내린 문화들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이 금을 사용한 금의 문화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림에 장식을 하거나 옷이나 장신구에도 금을 사용했습니다. 국립박물관에 있는 신라의 왕관을 보면 전부 금으로 되어있죠? 그리고 사람이 죽었을 때 금을 같이 매장하는 것도 이런 문화의 특징입니다. 신라인의 무덤을 파면 대개 금이 많이 나옵니다.(그래서 일제시대에 일본인의 주요 도굴 대상은 신라 문화재였습니다.) 김(金)씨도 원래 금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습니다.

무튼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금을 숭상하는 문화가 불화에도 나타난거죠.

이상 허접한 답변이었습니다. 질문에 구체적인 부분이 많은걸 보니 불교미술쪽을 공부하고 계신가 보네요. 제가 굼뱅이 앞에서 주름잡은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도움 되셨길 바랍니다.

 

 

질문 작성 날짜 : 201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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