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들판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습니다.
저는 그 미루나무를 느낌표(!)라 이름 합니다.
은현리 들판의 느낌표는 들판이 쓰는 문장 끝에 찍히는 살아 있는 느낌표입니다.
들판에 봄빛 살아날 때면 느낌표도 연초록으로 찍혀 있고,
여름날 들판이 무성해지면 느낌표도 살이 올라 있습니다.
가을에는 들판의 빛을 따라 황금빛으로 변해 가고 겨울이 되면
빈 들판에 빈 몸 하나 고독하게 찍혀 있습니다.
들판과 느낌표는 한 문장입니다.
들판이 표현하는 문장의 색깔과 향기로 미루나무는 서 있습니다.
저는 미루나무를 통해 은현리 들판을 읽습니다.
사람과 사랑도 저와 같은 관계일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이 마음으로 쓰는 문장입니다.
그 문장은 한없이 뜨겁기도 하고
때로는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그 문장의 느낌표는 그 사람의 눈에 찍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다보십시오.
그 속에 어떤 느낌표가 찍혀 있는지 쉽게 알 것입니다.
‘눈부처’란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습니다.
눈동자에 비쳐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눈부처라 합니다.
사랑은 그 눈부처를 보는 일입니다.
시월입니다.
집 마당의 목련나뭇잎이 시들기 시작합니다.
잎이 시드는 것은 땅이 쉬고 싶어서 나무가 반응하는 느낌일 것입니다.
사람도 이 땅에 걸어다니는 나무입니다.
시월에는 사람도 시월의 느낌표가 됩니다.
은현리 들판의 느낌표가 사색의 시간을 예언하고
이 가을 나는 가장 빛나는 느낌표로 서 있고 싶습니다.
내 앞의 문장은 그대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뒤편에 사랑의 향기 그윽한 !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