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자유게시판

9. 간화선 지침-화두의심(話頭疑心)의 주작(做作)

김창엽

view : 2198

9. 화두의심(話頭疑心)의 주작(做作)

공부에 방해가 되는 생활을 바꾸어야 하고, 소견이 자각되어야 한다.

평상시에 번뇌 망상과 더불어 많은 사유를 해야 한다.

공부가 무엇이기에 번뇌망상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가?

무엇이 공부인데 안 되는가?

정직하게 말해서 공부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공부가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공부 속에는 알고 모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공부가 안 된다고 할 뿐이다.

이런 하찮은 것들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

무엇인가 문답을 통해서 대답의 내용을 기준으로 시(是)와 비(非)를 가려서 공부가 <되었다, 안 되었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선(禪)처럼 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른 선(禪)의 공부가 아니고 선(禪)의 고질적인 병통(病痛)이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우리 안에서는 오온(五蘊)으로 작용한다.

이 오온(五蘊)이 번뇌망상이고, 이것에 붙들리면 중생이고, 그 현상이 무상(無常)인 줄 알면 부처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공부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화두한다고 하면서 무엇인가를 들고 다닌다.

그래서 억지로 하는 화두가 되고 만다.

그러니까 밥 하는 사람은 밥을 태우고, 운전하는 사람은 사고를 내는 등등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화두를 하면서 늘 순간순간마다 깨어 있어야 한다.

화두를 생각으로 조작하면 막힌다.

성성적적(惺惺寂寂)하면 화두(話頭)이고, 적적성성(寂寂惺惺)하면 명상(冥想)일 뿐이다.

막히면 의심(疑心)이 안 된다.

만약에 의심(疑心)이 그치지 아니하면 이것이 참의심(眞疑心)이니, 만약 의심을 한번 잠깐 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으로 의심함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주작(做作)에 속하느니라.

이런 연고(緣故)로 혼침(昏沈)과 잡념이 다 마음에 들어와서 공부를 방해하게 되느니라.

화두는 조사가 해 놓은 말인데, 그 말에는 뜻이 있다.

그 뜻을 간(看)하는 것이 화두이다.

‘말의 머리’ 로서 그 말의 총체적인 뜻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은 생각으로는 접근이 안 되는 것이다.

그 말의 뜻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고, 이미 가지고 있는 그 말의 본체(本體)를 드러낼 뿐이지, 말(言)이나 글(語)로서 나타내고자 해서는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